Global Analysis

종교적 공동체에 선교적으로 접근하기

종교 간 변증을 위한 탄원과 제안

Benno van den Toren 5월 2024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는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벧전 3:15)할 것을 당부한다.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변증학은 주로 세속적인 현대적 사고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을 다루어 왔다. ‘신은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가?’, ‘기독교 신앙은 과학과 양립할 수 있는가?’ 물론, 최초의 변증가들은 주로 다종교적인 환경에서 연설했는데, 이러한 환경은 사도행전 17장의 아레오바고에서 사도 바울의 청중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의 연설은 성경의 저자들 역시 변증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사복음서의 저자들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해,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내용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특정 청중에게 복음이란 메시지의 신뢰성과 관련성을 만들기 위해 믿을만한 증거를 제시했다. 누가는 데오빌로와 그의 동료인 독자들에게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전해 들은 이야기가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증인의 신뢰성에 대한 질문은 요한복음에서도 마찬가지로 핵심적인 주제이다. 마태는 유대인 독자들이 제기한 구체적인 문제에 답을 하고자 했다. ‘이 예수가 과연 히브리 성경에서 기다리던 메시아가 맞는가?’ 그리고 마가는 ‘십자가에 대한 변론’을 제시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이 범죄자가 과연 참된 왕일 수 있는가?’[1]

타 종교인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적 증언

어떤 이들은 종교 간 변증적 증언이 초기 교회 당시에 비해 오늘날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문화 영역에서 종교적, 문화적 상대주의가 지배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종교적인 헌신을 바라보고 있다. 즉, 종교는 진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조직하고 함께 공유하는 경험과 가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현대 세계에 종교가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프로젝트나 건축물이 아닌, 그분의 나라를 여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된다. 종교에 가치가 있든 없든 인간이 만들어낸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대응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이 세상의 실체를 반영하는 것임을 믿는 이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방법, 그리고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를 기꺼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종교 간 변증에 대한 문제가 또 다를 수 있다.[2] 인도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는 종교가 주로 공동체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사회에서는 다수 종교와 소수 종교 사이에 위태로운 균형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선교는 자신의 공동체와 권력을 키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개종 활동으로 여겨지며, 경계의 대상이 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목적이 타인을 조종하는 것이 아닌 복음을 증거하는 데 있으며, 공동체의 성장이 아닌 진리를 제시하는 데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증거하는 것에 대해 확실히 책임감을 가질 것을 의미한다.

종교에 가치가 있든 없든 인간이 만들어낸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대응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이 세상의 실체를 반영하는 것임을 믿는 이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방법, 그리고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를 기꺼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맘(imams), 사제, 승려, 산야신(sannyasins) 또는 헌신적인 평신도 신자로 종교 공동체에 깊이 헌신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종교 간 변증은 가장 좋은 접근 방식이 될 것이다. 너무 많은 선교 활동이 종교 공동체의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만약 다른 종교 공동체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기독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의 전통보다 참되고, 선하며, 훨씬 우월하다는 믿음으로 인해 그 종교를 받아들인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이 진리라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혹은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들만 변증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전통에 헌신하는 타 종교인들도 종종 변증 담론에 관여한다. 여기에는 반기독교적인 변증 논리가 포함될 수 있다. ‘삼위일체를 믿는 것은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업보(karma)라는 개념을 믿는 것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보다 더 정의롭지 않은가?’, ‘신을 알 수도, 형언할 수도 없으며 어떤 종교도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기독교는 과거 식민지 개척자들인 백인들의 종교가 아닌가?’ 이런 신념 이면에는 무언의 배경이 있지만, 대화의 상대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와 그 연관성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이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어울리지 않는 서구의 변증 모델

따라서, 종교 간 변증은 분명 필요하지만, 서구에서 개발된 기존의 변증학 모델은 다종교적인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모델은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질문에 답하는 경우가 많다. ‘신은 존재하는가?’, ‘종교는 과학과 양립할 수 있는가?’ 질문 자체는 비슷할 수 있어도, 그 질문에 대한 배경은 여전히 다를 수 있다. 신을 역사 속에서 알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일반적인 현대인들과 힌두교인들이 제기하는 질문의 형태는 매우 다르다. 다른 종교적 맥락은 다른 질문을 제기하게 할 뿐만 아니라, 추론하는 방식,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 또한 다르다.

서구의 많은 변증 모델도 편협한 합리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모델은 사람들의 감정적인 삶, 성향, 충실함을 뒤로한 채 지적인 문제만을 다룬다. 어떻게 하면 변증학이 현실에 더 민감해지고, 대화하는 상대방과 더 연관성이 있게 만들지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비서구권과 서구권 모두에서 변증적 증거를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다.

종교 간 변증적 대화 구축하기

먼저, 종교 간 변증은 총체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을 대하는 데 있어 사상뿐만 아니라 욕망, 헌신, 충성심, 감정적 짐을 지닌 통합적인 대상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는 지적인 차원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들이 사람들의 필요, 감정, 욕구에만 호소한다면 전도는 선전(propaganda)이 되거나 심지어는 조종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측면을 진중하게 받아들여서 사람들이 느끼는 필요, 직감적인 반응, 충성심을 비판적으로 고려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그 목표는 여러 가지 영향이 상충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무엇이 진실하고 선하며 진정으로 유익한지 발견하는 것이다.

둘째, 종교 간 변증은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경우에서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논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람, 공동체, 맥락에 해당하는 장애물을 발견하고 연결점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변증은 대화식으로 행해져야 한다. 변증가는 말을 하기 이전에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깊은 동기, 숨겨진 배경, 개인사에 대해 세심하게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빠른 답만을 제시하는 민첩한 토론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새로운 지식,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에 대해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변증의 방식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종교간 대화의 변증자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견해를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선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셋째, 종교 간 변증은 구체화하여야 한다. 변증은 모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깊은 관심을 반영해야 하며, 또한 우상숭배와 위선을 드러낼 때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가졌던 용기를 담아내야 한다. 변증은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의 표현대로 ‘복음의 해석’ 그 자체인 공동체의 삶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3] 종교는 세계관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의 대화 상대는 기독교가 전하는 진리와 세계관을 고려할 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매력적이며 견고한 삶의 방식을 보이는지, 그 가치가 추구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맥락을 바탕으로 구체화하는 변증의 방식이 단순하게 여러 생각을 늘어놓는 것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다.

마지막으로, 종교 간 변증은 항상 삼각형의 모양을 띠어야 한다. 변증은 단순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삶의 방식과 세계관의 가치를 설득시키는 쌍방향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공동체보다 더 큰 실재,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고 성령을 통해 인격적으로 만난 하나님을 포함하는 삼자의 대화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견해를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선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때, 우리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하시는 그분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변증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리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통해 우리의 삶 또한 풍요로워질 것이다.

겸손한 자신감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이러한 종교 간 변증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겸손한 자세로 변증에 참여하는 것은, 변증을 통해 우리의 특출난 통찰력이나 깊은 영적 체험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역시 은혜로 받은 선물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깊이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우리보다도 훨씬 더 부지런하게 영적인 길을 추구하고 더 고상한 영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다른 종교의 신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신앙의 근거는 영적 체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변증은 대화일 뿐만 아니라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에서 우리가 만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이러한 자신감은 모든 비판 혹은 질문에 대처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증인의 역할을 감당한 사람들은 이미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고 성경적 증언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확인하였으며, 고로 우리의 증언에 힘을 싣는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가진 자신감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생각해야 한다. 전도자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는 인도에서 주최한 종교 간 원탁회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상황에서 비장의 카드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분께서 차이를 만드셨다.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흠이 많고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흠이 없으시고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있었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붙잡고 계셨다!’[4]

Endnotes

  1. Robert H. Gundry, Mark: A Commentary on His Apology for the Cross (Grand Rapids, MI: Eerdmans, 2000).Endnotes
  2. Editor’s note: See article entitled ‘Delivering the Good News to Hindus,’ by Rabbi Jayakaran, Lausanne Global Analysis, July 2014.
  3. Lesslie Newbigin, T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 (Grand Rapids; Geneva: Eerdmans; WCC Publications, 1989), 222–33.
  4. E. Stanley Jones, A Song of Ascents: A Spiritual Autobiography (Nashville: Abingdon Press, 1968), 239-40.

저자 약력

Benno van den Toren

벤노 반 덴 토렌은 네덜란드 흐로닝언 개신교 신학대학교의 문화 간 신학 교수이다. 최근 강산 탄(Kang-San Tan)과 함께 Humble Confidence: A Model for Interfaith Apologetics(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22)를 저술했다. 이 책의 네덜란드어 번역본도 이용 가능하다. 참조: https://www.kokboekencentrum.nl/boek/open-en-onbevan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