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Analysis

사막에서 도시에 이르기까지

21세기 선교적인 삶

Lawrence Ko 5월 2024

역사 속 새 일: 사막 속의 강

칼 재스퍼(Karl Jasper)는 기원전 5세기에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여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철학적 성찰의 시대가 있었고,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인도의 석가모니, 중국의 공자와 노자, 히브리 선지자와 같은 사상가들이 이때 생겨났음에 주목했다. 농업 혁명이 도시와 제국을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면서, 이 기축 시대(Axial Age)는 인류 문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후에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함께 전파된 기독교는 사막을 떠돌던 유대인들의 신앙을 활기찬 종교로 바꾸어 놓았다. 기독교는 천 년 동안 신성 로마 제국의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이사야 43장 19절에 예언된 ‘믿음 안에서 광야의 길과 사막의 강’을 열어주시는 ‘새 일(new thing)’이었다.

하지만 로마를 중심으로 성장한 기독교 왕국(Christendom)이 자부심을 가진 것은 문맹인 대중의 영원한 운명을 중재하는 호화로운 종교 기관과 강력한 성직자 구조였다. 사실상, 그들은 신자들의 생명을 빼앗아 사막 유배지로 돌려보낸 셈이었다.

이후 마틴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은 교회가 강요하는 제도주의와 율법주의로부터 신자들을 해방시켜 오직 믿음으로 ‘생명의 강’을 자유롭게 마실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15세기 이후 유럽은 계몽주의에서 개신교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현대 세계를 형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또 다른 철학적 성찰의 물결이 전 세계에 퍼질 수 있게 했다.

기독교가 아시아의 주된 종교가 될 수 있는가?

전 세계로 흘러가던 기독교는 세계의 지배적인 종교로 부상했다. 19세기 기독교 선교의 진보는 ‘위대한 세기(Great Century)’로 묘사되었으며, 이 시대에 세계 전체의 복음화가 이 세대에서 곧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주의에 가득 찼다. 식민지 군함과 상선은 확장에 대한 비전을 더 크게 만들었고, 이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라는 외국 땅에서 기독교가 전역에 퍼지게 하고자 하는 선교사들의 협업과 화합의 꿈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초기 선교지의 원주민 지도자들은 서구에서 기독교가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렸고, 서양 선교사들이 국내 시장이 말라가는 가운데에도 새 시장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인식했다. 돈은 신자들을 얻는 데 중요한 열쇠였고, 개종한 사람들은 자국에서 ‘쌀 기독교인’ 혹은 ‘작은 서양인’이라고 멸시를 당했다. 많은 사람이 기독교가 단순히 외래 종교이고 실제로 서양 신앙이라는 이유로 그 사회의 주된 종교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서양 기독교 선교가 띠는 역사적인 색깔은 특히 역사적 의식이 강한 문화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다.

세계 기독교의 재조명

21세기의 급속한 도시화 시대에 살며 제4차 로잔대회를 앞두고 있는 우리는 우리 세대에 세계 복음화가 임박했다는 잘못된 낙관주의에 빠져있는가? 아니면 도시의 대형 교회에 많은 사람이 모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다시 한번 사막의 신앙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가?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오늘날의 교회와 예수님 시대 제2성전 사이의 유사점을 알고 있다면, 이 질문에 대해 더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장엄한 성전의 종말이 가까웠다는 경고적인 예언이 있었다.

서구 문화의 형식에서 벗어나 토착화되지 않는 이상 다수 세계의 교회는 이 땅에서 주된 신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토착 교회는 문화와 구조의 변화 없이 언어만 번역하는 것을 넘어, 현지화된 기독교의 형태를 개발해야 한다. 세계화, 그리고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함께 다중심적 세계 기독교의 부상은 신앙에 대한 새로운 표현들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이다.[3] 우리는 사람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여 현지의 문화적, 철학적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우리는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이는 마치 기축 시대의 철학, 인류학적 성찰과 유사하다. 광야에서 방황하는 우리의 여정에 다시 한번 불을 지필 수 있는 ‘새 일’은 무엇일까?

나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새 일’이 되셨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그분의 종말론적 공동체, 선교적 공동체, 성육신적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비전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우리 안에 채워나갈 때, 우리는 ‘천상의 도시(Celestial City)’로 가는 길에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망의 종말론적 공동체

그리스도께서는 충만한 때에 오셔서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자 사람으로 성육신하셨다. 그분의 강림하심은 역사가 여전히 하나님 손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워 겸손하게 종으로 사시다가 결국 굴욕적인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어 목숨을 버리신 그분의 비우심(kenosis)은 인간 삶의 새로운 원형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새로운 인간성을 새로운 피조물이라 부른다.

톰 라이트(Nicholas Tomas Wright)는 교회를 시험 프로젝트라고 부른다.[4]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새 피조물인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 미래의 새로운 삶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종말론적 공동체이기도 하다. 교회는 역사적이면서도 종말론적이다. 희망의 신학자 유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이 말한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론적인 기초를 가지고 있지만, 종말론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5]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은 교회가 전하는 역사 속에서 희망적인 변화의 비전을 세상에 제시할 수 있다.

믿음의 선교적 공동체

초대 교회는 스스로를 에클레시아 (‘부름 받은’ 모임) 신앙 공동체라고 여겼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자로 세상에 파송될 사람들임을 의미했다. 교회는 핍박 속에 있었고, 제자들에게는 예배할 수 있는 믿음과 증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초대 교회가 성장하고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자들이 스스로를 종말론적 공동체이자 선교적 공동체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도적 교회, 즉 보냄 받은 자(apostolos)로 부름 받았다고 이해했다. 이는 사도들에게만 국한된 역할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초대 교회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선교적 역할에 대한 이해로 번성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박해로 인해 흩어졌을 때,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그 도시가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설계하고 건설하셨음을 믿었다. 

21세기 교회가 대위임령을 수행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평신도 중심의 사역을 회복하고 온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 . . 자들의 만인 제사장직의 개념대로 교회 전체가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

안디옥 교회는 모두 평신도 선교사들에 의해 개척되었다. 교회 지도자들 안에도 여러 민족, 여러 문화가 섞여 있었다. 평신도들이 주도한 교회 개척의 계획은 예루살렘의 모 교회 지도자들을 움직여 바나바를 파송하게 했고, 추후에는 그 지도자들이 바울과 만나 이방인 기독교의 특징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예루살렘 공의회를 소집하게 했다. 

21세기 교회가 대위임령을 수행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평신도 중심의 사역을 회복하고 온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6]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사역자-평신도, 성직-일반직이라는 이중 구분을 없애야 한다. 사역자나 전임 선교사와 같은 전임사역자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우월한 지위를 누린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루터가 구상한 신자들의 만인 제사장직의 개념대로 교회 전체가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희망을 이뤄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도록 해방시키는 이 종교개혁의 미완성 과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성육신적 사랑의 공동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인류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따라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장 큰 계명을 뛰어넘는 것이다. 사랑은 교회와 종말론적 공동체의 특징이다. 종말론적 공동체로서 교회의 이러한 비전은 신앙의 표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 찬 현재의 교회 형태를 재정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구의 구조적 형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21세기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담장을 넘어 지역 사회의 삶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다

최근 팬데믹은 수년 동안 교회 건물에 대한 접근과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가정 교회 운동부터 유럽의 새로운 교회 개척 운동에 이르기까지 교회 건물을 세우기 위한 기금 모금 없이도 교회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도시에서는 주일에 풍부한 상상력과 혁신적인 방식을 바탕으로 공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교회를 만들 수 있다.

교회가 신실한 예배자이자 복음의 증인으로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려면 우리는 성육신적이어야 한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사셨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실제적인 일상생활에서 공동체를 섬겨야 한다. 브루스 윈터(Bruce Winter)가 권고한 것처럼, 값비싼 종교적 구조와 문화적 관습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선한 일과 시민들의 이익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지역사회의 사회적 필요 및 문화적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7]

그리스도인에게 성육신적 삶이란 시민 사회에 참여하고 화평케 하는 자로서 사회적 결속을 도모하는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한 예로, 다민족, 다종교 국가인 싱가포르에 설립된 아시안 저니스(Asian Journeys)는 젊은이들이 공동체에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인종적, 종교적 차이와 갈등을 중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많은 그리스도인 청년이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결론

역사는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장이며, ‘새로운 창조 종말론은 역사 속에서 탄생했다.’[8]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단순히 복음을 선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리에서 실천하도록 선교적으로 파송 받아 복음의 증인으로서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섬겨야 한다. 이는 우리가 도시 안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참여할 때 가능하다. 물론 21세기에 도시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도전 과제는 만만치 않지만, 그 안에서 잡을 기회는 엄청나다.[9]

Endnotes

  1. Kenneth Scott Latourette, History of the Expansion of Christianity v. 6: The Great Century in Northern Africa and Asia, 1800-1914 (England: Paternoster Press, New edition, 1971).
  2. John R Mott, 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 (North America: Sagwan Press, 2018).
  3. See Scott W. Sunquist, The Unexpected Christian Century: The Reversal and Transformation of Global Christianity, 1900-2000 (Michigan: Baker Academic, 2015).
  4. N.T. Wright, History and Eschatology: Jesus and the Promise of Natural Theology (Texas: Baylor University Press, 2019), 260.
  5. Jurgen Moltmann, The Church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 Contribution to Messianic Ecclesiology (Minnesota: Augsburg Fortress, 1993), 13.
  6. Editor’s note: See article entitled ‘A Radical Vision of the Whole Church,’ by Wonsuk Ma, Lausanne Global Analysis, May 2023.
  7. See Bruce Winter, Seek the Welfare of the City: Christians as Benefactors and Citizens (Michigan: Wm. B. Eerdmans, 1996), especially as he discusses civic obligations to help widows and needy in the society and participation in the politeia.
  8. Wright, History and Eschatology, 227
  9. Editor’s note: See article entitled ‘A Holistic Vision of Mission in Changing Times,’ by Sam Cho, Lausanne Global Analysis, July 2023.

저자 약력

Lawrence Ko

로런스 코는 아시아 문화 연구와 지역사회 개발에 전념하는 싱가포르 소재 사회적 기업 아시안 저니스(Asian Journeys Ltd)의 설립자이자 이사이다. 지난 34년 동안 목사, 선교 사역자, 기업 강사로 활동해 왔다. 그는 아시아의 도시들에서 봉사할 청소년 자원봉사자들 조직해 왔으며, 환경 선교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또한 싱가포르의 전 코디네이터로 로잔운동에 참여했으며, 2011년부터 아시아 로잔위원회에서 활동해 왔고, 현재 로잔의 글로벌 공청회 팀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